“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아침 6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을 접속한 뒤 ‘한국고전종합DB’에 들어가 ‘경서성독’을 클릭하고 ‘논어’를 연다. 그리고 성독자의 목소리에 따라 30분 동안 ‘논어’를 따라 읽는다. 성독(聲讀)은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훈장님의 리드미컬한 목소리에 맞춰 합창하듯 읽는 전통 서당 방식이다. 불교 경전을 읽는 독송(讀誦)과도 같은 맥락이다.
성독하는 동안 방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한다. 만세의 사표가 되어 가르침을 주는 공자님, 그리고 수천 년 동안 그 앞에 앉아 환희로움에 젖었던 제자들이다. 그 제자들은 공자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무릎제자 안회, 자공, 자로, 증자를 비롯해 윗대의 맥을 이은 자사, 맹자, 정호와 정이 형제, 주희 등의 중국 진유(眞儒)들, 그리고 동방에 유학의 등불을 밝힌 설총, 최치원, 안향,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이율곡 등이다. 이들은 모두 의관을 정제하고 단정하게 앉아 진지한 눈빛으로 공자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인다. 그 어떤 유명인의 모임이나 소셜 커뮤니티가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있을까.
그 ‘도통(道統)의 라인’에 내가 앉아 있다. 시공간이 다르고 개성도 제각각인 거물들을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해주는 연결고리는 경서를 성독하는 훈장님의 목소리다. 나는 기라성 같은 거물들에게 결코 주눅 들지 않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당당하게 ‘논어’를 성독한다. 그런 환희심이 매일 아침 6시면 솟구쳐 오른다. 성독 덕분이다. 성독은 요즘 말로 하면 ‘리딩(reading)’이다. 리딩은 눈으로만 읽는 목독(目讀)의 한계를 간단히 뛰어넘었다. 눈으로 보면서 소리 내어 읽는 데다 그 소리를 자기 귀로 들으니 단순히 눈으로만 하는 공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천후 학습 방법 덕분에 리딩하는 학습자는 몸 전체로 공부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거듭난다. 아침에 30분 동안 리딩한 ‘논어’의 문장은 익숙한 유행가 가사처럼 길거리를 걷다가도 느닷없이 흥얼거려질 때도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암송하고자 했던 ‘논어’가 드디어 나의 것이 된 것이다.
(중략)
숙독하면서 100번까지 읽어라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공부했을까. 이식(李植)의 ‘택당집’에는 ‘자손들에게 준 글’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내용이 들어 있다. 자손들이 읽어야 할 도서목록을 적어놓은 글이다. 도서목록은 다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과 ‘그 다음에 읽어야 할 책’, 그리고 ‘과거 공부에 필요한 책’ 등으로 분류해놓았다. 이식은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시경’과 ‘서경’ ‘논어’ ‘맹자’ ‘중용’ ‘대학’, 그리고 ‘강목’ ‘송감’ 등을 강추했다. 유교 교육의 핵심적인 책인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가장 먼저 추천했는데 나머지 책은 모두 역사책이다. ‘그 다음에 읽어야 할 책’ 역시 ‘주역’ ‘근사록’ 등등의 유교서적이었고, ‘과거 공부에 필요한 책’은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소식(蘇軾)의 글 등 문학, 사학, 철학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추천한 책 옆에는 그 책을 읽는 방법까지 세심하게 토를 달아놓았다. 자상한 어른이시다. 이를 테면 ‘시경’과 ‘서경’은 ‘대문 위주로 100번까지 읽도록’ 하였고 ‘논어’는 ‘장구(章句)와 함께 숙독(熟讀)하면서 100번까지 읽도록’ 했다. ‘맹자’는 ‘대문을 100번 읽도록’ 하고, ‘중용’과 ‘대학’은 ‘횟수를 제한하지 말고 아침저녁으로 돌려가면서 읽도록’ 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강목’과 ‘송감’은 ‘선생과 함께 한 번 강학한 뒤에 숙독’을 하고, 좋은 문자가 있거든 한두 권 정도 베껴 써서 ‘수십 번 읽도록’ 하라고 했다. 나머지 책들도 ‘좋은 글이 있거든 초록해서 읽어라’ ‘선생에게 배우고 나서 한 달에 한 번씩 읽어라’ ‘횟수를 정하지 말고 항상 읽어라’고 적어놓았다.
결론적으로 이식이 강조한 공부법의 포인트는 ‘무조건 100번을 읽어라’는 것이다. 기본이 100번이다. 긴 책은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중도에 덮어버리는 우리 세태와는 완전히 다른 공부법이다. 이식이 강조한 ‘100번 읽기’는 중국 후한(後漢) 때의 인물 동우(董遇)가 얘기한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다. 실제로 리딩을 하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100번이 아니라 50번만 읽어도 난해한 고문(古文)의 봉인이 저절로 풀리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해 결국은 외우는 것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기대승(奇大升)은 ‘고봉속집’에서 “학문을 하는 데는 모름지기 부지런해야 하고 또 반드시 외워야 하며 슬쩍 지나쳐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리딩은 단지 젊은 사람들만을 위한 공부 방법이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선비들이 평생 공부하는 방법이다. 조선 후기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은 ‘명재유고’에서 ‘상주 목사 한공(韓公) 행장’을 쓰면서 그를 “아침저녁으로 ‘중용’과 ‘논어’의 장구를 암송하기를 늙도록 그만두지 않았다”고 칭찬했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은 “매일 밤마다 ‘중용’ ‘대학’ ‘근사록’ 등을 반복해 익숙해지도록 외워 마치 자신의 말과 같이 암송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리딩의 대상으로 선정한 책은 사서오경이 많지만, 마음에 빛을 비추어줄 성스러운 책이라면 다 좋을 것이다. 불자(佛子)들은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을 독송해도 좋고, 기독교 신자라면 ‘성경’도 좋다. 필자 또한 언니의 49재 기간 동안에는 ‘논어’ 대신 ‘지장경’을 읽었다.
클릭 한 번으로 스승 모시는 시대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밤 10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을 접속한 뒤 ‘한국고전종합DB’에 들어가 ‘경서성독’을 클릭하고 ‘논어’를 연다. 그리고 성독자의 목소리에 따라 30분 동안 아침에 읽었던 부분을 다시 리딩한다. 잠들기 전에 성독한 내용은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잠자리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심혁주 박사는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에서 “반복적인 리딩을 하면 그 문장들은 뇌에 기억되지 않고 몸에 기억되고, 뼈에 각인된다”고 적고 있다. 그가 대만에서 티베트어 수업을 받을 때 한 학기 동안 ‘수업시간 내내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를 거듭한 결과 ‘매년 겨울이면 걸리던 기침감기도 사라지고 호흡이 길어져 기분이 좋아졌다’고 기억한다. 그의 스승은 “경전을 소리 내어 읽으면 몸과 뇌, 얼굴을 바꾸어버린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밤 11시. 리딩을 끝낸 후 잠자리에 누워서 감탄한다. 우리는 정말 공부하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마음만 먹으면 클릭 한 번으로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시대인가. 이런 좋은 기회에 공부하지 않으면 언제 또 하겠는가.
조정육 미술칼럼니스트
http://n.news.naver.com/article/053/0000026083?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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